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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life

치파와 공원에 사는 뱅골호랑이

by simplicity 2021. 11. 5.

치파와 위스콘신(Chippewa, WI)은 미국에서 몇 년간 일이 잘 안 풀려서 방황했었던 시기에 찾았던 작은 도시이다. 이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자연환경과 풍경들로 마음의 안정을 얻었던 우리만의 힐링 장소라 할 수 있다.

 

파란-하늘-흰구름이-강물에-비친-모습
강물에 비친 구름 

 

누구나 하나쯤 있는 아지트

 

누구나 새로운 환경에 맞닥뜨리게 되면 적응을 잘해나가는 사람도 있고, 노력을 해도 일이 쉽게 일이 잘 안 풀리는 사람이 있다. 아니면 아예 문제를 회피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람의 유형에 따라 문제를 보는 관점이나 태도에 따라 문제를 빨리 극복할 수도 있고 더디게 해결할 수도 있다. 

 

'반드시 나는 이런 유형이야~' 라고 확정할 수는 없다. 누구나가 문제를 직면하는 상황이나 용도에 따라 대응할 때 위의 세 가지를 모두 선택하여 사용하기 때문이다.   

 

나의 패기가 넘쳤던 20대를 되돌아보면, 위기가 뭔지도 모르게, 위기가 있어도 잘 대응해서 꿋꿋이 나아갔던 것만 같다. 자신감도 넘치고 위기가 뭔지도 모를 것 같은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다른 환경과 문화에 직면하면서 몰려오는 방황이 마치 사춘기를 다시 앓는 것처럼 찾아왔었다.  

소나무가-보이는-모습
소나무 

치파와는 그런 나의 감정을 잘 터뜨려준 고마운 도시이다.  

 

자연환경과 공기, 풍경들이 너무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듯, 느려도 좋고, 천천히 가도 좋으니 서서히 적응하라고 위로를 해주는 아지트와도 같은 곳이다. 

 

 

불편한 동물원

 

치파와 공원 입구에는 무료로 운영되는 동물원이 있다. 가족들이 나들이로 나와 생일파티도 하다가 동물원을 구경하며 쉴 수 있는 가족친화적인 공원이다. 

갈색-보도블럭-하늘색-나무그림이-그려진-동물원이-보이는-모습
동물원

그런데 동물원 안에는 동물이 거의 없고 텅 비어있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이곳에는 하이애나와 뱅골 호랑이, 곰, 바이슨(들소)만 존재하는 희한한 동물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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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 입구 

 

사실 어느 순간부터 동물원에 가는 것이 싫어졌다. 케이지 안에 갇힌 동물들을 보면 가슴이 쿵쾅 뛰고, 이들을 구경하는 것이 불편하고 마치 죄를 짓는듯한 마음이 들어서 동물원의 발길을 끊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지나친 감정이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감정이 그런 것이다. 

 

몇 년전, 미네소타 동물원에 가본 적이 있다. 이곳의 동물원은 특이하게도 동물을 포착하는 것이 굉장히 행운으로 넓은 들판에 야생성을 잃지 않도록 살아갈 수 있게 생태계를 조성한 동물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는 동물들이 안타까웠지만, 동물의 초상권이 보장된다면야 이런 운영방식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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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소타 동물원 모습

 

하지만 치파와 공원 안에 있는 동물원은 작년에 이어 올해 또다시 방문했을 때 마치 데자뷔를 연상하듯 같은 모습으로 케이지 안에 갇혀 살고 있는 뱅골 호랑이와 곰 그리고 하이에나를 보며 많은 안타까움을 느꼈다. 

 

무기력하게 미동 없이 잠을 자는 뱅골 호랑이와 방황하는 듯 계속 한 자리를 빙빙 도는 곰 그리고 사슴 발을 뜯어먹고 있는 하이에나를 바라보며 무언가 무기력한 기운이 감돌았다. 

 

특히 곰이 한자리 빙빙 도는 행위는 야생동물이 비좁고 무료한 공간에 갇혀있을 때 보이는 모습을 정형 행동이라고 한다. 

왼쪽에-하이애나가-먹이를-먹고있는-모습-오른쪽에-곰이-웅크리고-자고있는-모습
하이애나와 곰

 

그중 가장 마음이 아팠던 뱅골 호랑이는 항상 구석에서 미동도 없이 자는 모습이 작년과 올해 너무나도 같아서 무언가 애처롭고 미안했다. 

왼쪽-흰색-줄무늬-호랑이가-자고있는-모습-오른쪽-흰색-줄무늬-호랑이가-자고있는-모습이-보이는-모습
(왼쪽) 2020년 호랑이 모습 / 오른쪽) 2021년 호랑이모습

 

동물원 운영의 아이러니 

 

'동물원의 탄생(니겔 로스펠스)'이라는 책에는 인간이 야생동물을 가둔 역사는 고대와 중세의 황제·왕족·귀족이 부와 권력의 과시나 단순한 수집 목적으로 야생동물을 왕궁이나 사유지에 전시해왔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처럼 일반 대중의 관람을 위해 만들어진 ‘근대식 동물원’은 18∼19세기 제국주의와 함께 만들어졌다. 유럽과 북미의 열강들은 아프리카·아시아 등을 침략하면서 그 지역의 문화재와 원주민뿐 아니라 야생 동식물을 대규모로 약탈했다. 닥치는 대로 잡아들인 야생동물을 자국 시민들에게 이른바 ‘자연교육’ 목적으로 개방한 것이 근대식 동물원의 시작이다.

 

최대한 많은 종, 많은 수의 야생동물을 전시해 대중이 편하게 관람하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었던 근대식 동물원은 21세기에 접어들어 변화에 직면하게 된다. 서식지와 생태계의 급격한 파괴로 지구 상에서 사라질 위기에 놓인 동물이 많아지자, 동물원이 이들을 지키는 ‘멸종위기종 보전센터’ 역할을 해야 하는 필요성이 높아진 것이다.

 

👉 동물원은 낭만적 공간이 아니다 한겨레 기사 참고 http://m.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28711.html

 

미국의 들소 바이슨은 1889년 무자비한 학살로 인해 천마리로 격감하였다가, 현재는 보호에 의해 수가 3만 마리가 살고 있다고 한다.  

갈색-들판에-바이슨이-풀을 뜯고-있는-모습
바이슨

 

아름다운 풍경 안에 헛헛함 

 

치파와 공원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작년보다 더 가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었고 붉은 옷을 입은 나무 숲 속 길은 마치 동화 속을 걷는 듯 황홀하고 좋았다. 

 

작년 이 길을 걷고 난 후, 우리의 복잡하고 해결하지 못했던 일들은 어느 정도 해결했고 적응도 잘 해서 자리를 잘 잡아가고 있지만, 동물원의 동물들은 여전히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어서 왠지 마음의 헛헛함이 가시질 않았다. 

낙엽길-노란색-나뭇잎-나무-숲속길이-보이는-모습
치파와 숲속길

 

 

 

+_+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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