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꽃 / 김영하 작가
소설의 시작은 1905년 대한제국기 윽사늑약(일본이 한국의 외교권을 빼앗기 위하여 강제적으로 맺은 조약) 이후에 멕시코 유카탄으로 이민을 간 한인들의 비극적인 삶을 다룬 역사 소설이다.

소설의 목차와 줄거리
< 목차 >
1부
2부
3부
에필로그
< 줄거리 >
1부~3부구성, 에필로그로 이루어진 단편소설이다. 역사적 배경 사실을 기반으로 쓰인 소설이다. 누군가 나의 가족이었었거나 친구 또는 지인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거나 죽었다고 생각했을 때, 단 한 번도 이름 들어보지 못한 땅, 갈 수 없는 땅 멕시코 유카탄에서 불행한 삶을 마감했다는 얘기를 듣는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기반이 흔들리는 나라를 탈출해 새로운 희망을 품고 다다른 미지의 세계는 조선인들이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비정상적 인신매매 노동과 혹독한 매질에 하나둘씩 죽어간다. 매일 엄청난 양의 에네켄 잎을 잘라서 모아도 한인들의 채무를 갚아 나가기는 빠듯하다. 농장주들은 툭하면 시비를 걸고, 손이 느리다는 이유로 매질을 하거나 임금을 삭감하는 식으로 노동자들을 노예로 가둬뒀다.
이 소설 중후반으로 가면서부터는 각 농장으로 뿔뿔이 흩어진 한인들의 결탁력을 보여주는 모습 그리고 각자의 운명을 스스로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모습들을 잘 그려준다. 각 농장 무리마다 마음이 맡는 무리와 결탁해 오만불손한 농장주와 대결하여 싸워 나간 사람들, 채무를 다 갚아도 그대로 농장에 남아서 일을 하는 사람들, 새로운 권력을 쥐고 누리다가 타락하는 사람들(권용준), 자유의 몸이 되어 농장에서 나와 조선으로 돌아가지 않고 멕시코에 떠돌다가 과테말라 혁명군이 제시한 거액에 이민자들은 남미에서 '신대한'이라는 새로운 나라를 세울 계획을 꿈꾼다. 그러나 과테말라 정부군의 대대적인 소탕작전으로 인해 한인 대부분 전사를 하며, 소설의 끝은 사실상 조선으로 다시 돌아간 조선인이 없다. 살아남아도 멕시코에서 사업을 하거나(연수는 왕족의 딸이었지만 고리 매매업자로 살아간다), 안정된 곳에 정착하지 못해 모두 불행한 삶을 살다가 끝이 난다.
소설의 관점 포인트
<소설의 캐릭터>
소설의 중인공은 보부상의 손에서 탈출해 나온 고아 청년 김이정이다. 그리고 김이정의 애인인 왕족의 딸 이연수와 그의 가족들, 주인공에게 김이정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정신적 아버지 노릇을 하는 제대군인 조장윤 등 한 무리를 이루고 있다.
또 하나의 무리는 파계한 신부 박광수, 그의 십자가를 강탈하는 도둑 최선길, 박광수에게 내림굿을 해주는 박수무당, 이들이 벌이는 샤머니즘의 축제에서 악사 노릇을 하는 내시 김옥선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멕시코로 떠나는 이민자들의 희망>
멕시코로 떠난 1033명의 사람들 - 농민, 몰락한 양반, 퇴역군인, 도시 부랑자. 이들 중 다수를 점하고 있는 것은 농민이다.
"부쳐먹을 땅도 없고 뒤를 봐줄 친척도 없는 자들이었다. 어느 나라보다도 절실하게 군대가 필요했던 허약한 제국, 그러나 제국의 곳간에는 그들을 먹여 살릴 쌀이 없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꿈을 가지고 큰 배에 오른다.
"누군가는 멕시코에 금이 있다고 했다. 누런 금이 쏟아져나와 벼락부자가 된 사람이 많다고 했다. 아니다, 거기는 미국이다,라고 또 어떤 이가 주장하지만 그것도 확실치는 않았다."
김이정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받고 앞으로 먼 미래의 자신을 상상해 본다.
"나는 김이정이다. 먼 나라로 간다. 그리고 어른 김이정이 되어 돌아온다. 이름과 돈을 갖고 돌아와 땅을 사고 거기에 벼를 심을 것이다. 땅을 가진 자는 존경을 받는다. 그것이 소년이 길에서 배운 단순한 진실이었다."
< 영화적 색채감>
소설 1부 중간 구간 즈음, 배 안에서 죽은 사람을 염을 하기 위해 박수무당이 굿하는 장면은 한 편의 선명한 색채가 드러나는 영화를 보고 있는 듯 실감 나는 언어적 표현을 하고 있다.
"피와 어둠, 춤과 노래, 시체와 무당이 빚어내는 어지러운 축제는 돌림병에 직면한 농경민족의 피를 데웠다. 핏속으로 흐르는 리듬이었다. 그들은 눈물을 흘리며 굿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우는 자, 기절하는 자가 속출했다."
< 나라 잃은 서러움 >
1905년 대한제국의 외교권은 일본으로 넘어갔고 미국과 독일, 프랑스의 외교 공간들은 차례로 서울을 철수 있다. 그들 국가 간 조선의 지배를 양해하는 비밀문서를 교환한다.
"그들이 떠나온 나라는 물에 떠러진 잉크 방울처럼 서서히 사라져 가고 있었다."
<유카탄의 에네켄 농장>
멕시코에 도착하자마자 조선인들은 스물 두 개의 농장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스페인 본토에서 이주한 정복자들은 본토의 귀족들처럼 행세하며 멋진 저택을 짓고 높은 담에 둘러싸여 하인과 노예들을 부리며 왕처럼 군림하는 것, 그것이 그들의 목표다.
조선인들은 처음 마체테로 에네켄 잎의 밑단을 쳐 자르기만 하면 되는 '벼를 수확하는 모습'으로 생각하고 만만하게 덤볐다가 에네켄의 두껍고 날카로운 가시에 베여 손과 다리 여기저기에 상처가 나기 시작한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하루 업무 정해진 시간 내에 농장주가 허락하는 하루 수확량을 만들어 내기 위해 일을 한다. 수확량이 적을 시, 저녁 사 먹을 돈을 지급하지 않아 배를 곯게 된다. 그렇게 일에 적응하기까지 조선인들인 에네켄의 잎에 살이 깊게 베이며 일을 해낸다. 오직 돈을 모아 다시 유카탄을 벗어나 조선땅으로 돌아가기 위하여.
"에네켄 삼십 단, 에네켄 잎 오십 장이 한 단이니까 그들이 하루 동안 잘라야 할 에네켄 잎은 최소한 천오백 장은 되어야 한다. "
"감독들이 채찍을 들기 시작했고 땀이 흥건한 조선인들의 등짝으로 채찍이 날아들었다... 말 위의 사내가 히죽거리며 웃고 있었다. "
"배워야 합니다. 오랑캐의 것이라도 배우고 익혀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 운명의 장난 >
흐름들이 만들어내는 서사의 선은 서로 이어지고 겹쳐지고 다양한 운명을 묘사하고 있다.
보부상 출신의 고아 청년은 혁명 전사를 거쳐 용명이 되고, 왕족의 딸은 고리대금업자가 된다. 파계 신부는 신내림을 받아 무당이 되고, 사냥꾼 출신의 퇴역 군인은 이발사가 되며, 십자가를 훔쳤던 도둑은 광신자가 되어 십자가에 매 달린다.
"한 달 후, 이들은 신전 광장에 티칼 역사상 가장 작은 나라를 세웠다. 국호는 신대한이었다. 그들이 알고 있는 국호는 대한과 조선뿐이므로 별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독자의 생각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을 소설의 형태로 빌려 가져와 실감 나는 캐릭터 묘사로 역사적 메시지를 잘 녹아낸 소설이라 생각된다. 책 읽는 내내 손에 땀이 나고 분노가 치밀어 오르지만 책을 다 읽고 나면 무언가 알 수 없는 무기력과 허무함 그리고 공허함이 아련히 자리 잡는 소설이다. 이 소설을 통해 멕시코 유카탄도 알게 되고 에네켄이라는 식물도 알게 되었고, 아직도 그 농장 주변에 살아가고 있는 한인 자손들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후 디아스포라가 된 한인들의 역사도 알아봤는데 참 가슴이 저미는 사실들이 많았다. 역사의 인과관계를 묻고자 어느 한쪽이 잘한 일 또는 잘 못한 일 이분화해서 평가할 수는 없다. 그냥 우리는 그 인과관계 속에 살아가는 한 도구이자 장면 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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